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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ing tour./국토종주(10.08.31)

[국토종주] 서울에서 해남까지 첫째 날-1 (10.08.31)

[국토종주] 서울에서 해남까지 첫째 날-1 (10.08.31)


-대장정의 서막-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나는 두 번의 기막힌 경험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피가 끓다 못해 주체를 못하던 20대 초반 철부지였고 

당연한 듯 같이 다음 여행을 떠나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일본소재의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녀석들과 달리 1달 늦은 8월중순이 돼서야 방학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적절한 친구들을 섭외 할 수 있었다. 

한 녀석은 ROTC에 한번 낙방해 재수하는 휴학생이었고 

다른 한 녀석은 10월 군입대를 앞둔 휴학생이었다. 


원래 사람은 입대 직전에 눈에 보이는 게 없지 않던가, 

군입대를 앞둔 친구의 주도하에 우리의 여행은 서서히 윤곽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방학이 되자 나는 일본에서 쓰던 자전거를 한국으로 공수해 가는 수고를 들일 정도로 의욕이 넘쳤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곧장 경로를 짜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저번 여행에서 안전을 소홀히 했던 것에 대한 대가를 혹독히 치렀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 신중을 기울였다. 

헬멧은 기본 공사현장에서 쓰일법한 커다란 경광봉까지 준비했다.


-출발-



첫날의 경로, 녹색선은 차를 타고 점프한 경로이다. 


여행 전날인 8월 30일 우리는 한 집에 모여 준비를 마쳤고 그 다음날 새벽에 출발했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서울도심은 자전거를 타기에 정말 최악이다. 

길 위를 미친 듯이 달리는 차들도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기본적으로 길이 개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천 서울 대공원까지 차를 타고 나갔다. 

차에서 자전거를 내리고 학창시절 질리도록 와봤던 과천 서울 대공원의 새벽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몸을 풀었다. 

자전거에 짐을 꾸리고 공원을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 리허설을 해보기도 했다. 

짐을 싣는 게 어설펐는지 자꾸만 짐이 흘러내려 몇 번이고 다시 짐을 꾸렸다.



이번 여행의 참가자

상당히 모자라 보인다.



3번째 여행이지만 짐꾸리는게 쉽지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1시간이 지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고, 파이팅을 외치며 공원을 나섰다. 

원을 나서자마자 우리에겐 큰 시련이 닥쳤다. 자전거가 다닐 수 있을만한 길이 보이지 않았다. 

서울과 과천을 잇는 4차로 도로가 우리 앞길을 막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길도 아닌 흙투성이 땅을 가로 질러야 됐었고 

얼마 가지 않아 인도가 나오긴 했지만 보도블럭 상태가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공원 입구서부터 문원까지 1km남짓 되는 거리였지만 ‘쉬었다 가자’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지쳐버렸다.  


출발부터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우리는 문원으로 살짝 빠져 한숨을 돌렸다. 

과천 바로 옆에 위치한 문원이란 작은 마을에는 문원체육공원 이라는 곳이 있는데 

시설이 굉장히 좋아 탄성을 자아냈다. 과천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문원에서 굴다리를 지나 과천시내 아파트 단지로 진입했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한 우리는 편의점이 나오자 잠깐 멈춰 삼각김밥이랑 샌드위치로 배를 채웠다.


배를 채워서 인지 우리는 과천-안양-의왕을 빠르게 통과했다. 

안양에서는 자전거포에 잠깐 들려 자전거벨을 구입했고 의왕에서는 여분의 타이어 튜브를 구입했다. 

이 때 자전거에 대해 무지했던 친구 혼자서 자전거포에 들어가 튜브 대신에 타이어를 사와 배꼽잡고 웃었었다.


의왕시에서 빠져나올 때 우리에게 다시 한번 시련이 닥쳤었다. 

도로정비구간이 나타나 흙탕물과 각종 공사자제들로 빼곡한 길을 달려야 했다. 

그렇게 험난하게 길을 지나고 나니 허탈감에 빠져버렸다. 

우리 앞에 나타난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의왕IC 고속도로진입구간: 이륜차 진입금지’


할 수 없이 우린 그 길을 다시 지나야 했다.



길을 잃어 당황한 우리는 잠시 멈춰 지도를 펼쳐봤다. 


자고로 지도는 우아하게 봐야된다!?


의왕시내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은 방금전 진입했던 이륜차 진입금지구역 밖에 없었다. 

부곡을 지나 우회해야 했다.


 다행히도 얼마 가지 않아 오봉역이 나왔고 철도길을 쭉 따라가면 수원까지 나왔다. 

오봉역을 지날 무렵 흐리멍텅했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던가. 

애초에 강력한 태풍인 곤파스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이번 여행을 강행했던 우리들에게 

이런 자잘한 비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페달을 밟던 도중 친구의 자전거에서 하얀고 작은 물체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멈추고 가방을 살펴보니 쌀봉지가 터져서 쌀이 새고 있었다. 

지나온 길에는 떨어진 쌀이 은하수를 이루듯 펼쳐져 있었다. 

서둘러 새 봉지에 쌀을 옮겨 담고 다시 출발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아침에 밥을 지어먹고 점심은 사서, 저녁은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서 먹기로 했다. 

부곡에 진입하자 마침 점심시간이 됐고 우리는 적당한 식당을 잡아 자전거를 멈췄다.



식당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는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자전거에 달아놓은 경보기가 비를 맞아 고장이 났는지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마을 전체가 떠나갈 듯 소리가 퍼졌고 

당황한 나는 경보기가 달렸던 싯포스트체를 뽑아내 경보기를 분리했다. 


마치 내가 자전거 도둑이 된 것 같았다. 

경보기에 달린 건전지를 분리하자 겨우 소리가 잦아들었다. 



한숨 돌리고 난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 수원갈비를 먹었다. 

비를 잔뜩 맞아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고 말았다.



지글지글



동치미가 의외로 메인인 고기에 비해 맛있어서 놀랬다.


양껏 배를 채운 우리는 수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발안에서 수원 가는 길은 굉장히 수월했다. 

바로 옆에 철도길이 있어서 쭉 따라가다 보니 성균관대 역이 나타났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성균관대역 규모에 흠칫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역을 지나치자마자 앞이 안보일 정도로 비가 대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잠시 숨도 고를 겸 고가도로 밑 공원에서 비를 피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성균관대 입구가 보였다. 

방학이어서 그런지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었다. 


성균관대는 한때 내가 가장 가고 싶던 대학이었다. 

지금은 비록 유학을 선택해 일본에 와있지만, 저 문을 통해 등교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왠지 모르게 설렜다.


얼마 지나자 비가 약해졌다. 태풍이 몰고 온 비구름 치곤 기세가 약했다. 

잠시 숨을 고른 우리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수원-오산-송탄-평택을 거치는 수월한 루트를 놔두고 우리는 화성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산방조제를 통해 곧장 아산시로 향할 수 있는 루트지만 공단이 많았고 인적조차 드물었다.


게다가 길마저 잃어버렸다. 

저녁은 되도록이면 직접 만들어서 먹으려 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비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짐을 풀 수 있을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한참을 헤맨 끝에 국도를 타고 발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발안 시내에서 적당히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비바람을 해치며 계속 페달을 밟았기 때문에 든든하게 메뉴는 족발로 정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오자 비가 더욱 거세졌다. 

발안을 벗어나자마자 천둥번개까지 치기 시작했다. 태풍이 바로 근처까지 다가왔다.


우리는 마땅히 묵을 장소를 찾지 못해 계속 달릴 수 밖에 없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다가 결국 해가 완전히 지고 말았다. 

하늘에 비구름이 가득해서 예상보다 해가 빨리 졌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쏟아지는 빗물이 안경에 맺혀 한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예견된 일이었을까? 어느 터널을 지날 때 나는 진흙더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져 

마주 오던 차량과 크게 부닥칠 뻔 했다.

 

다행히도 우리가 위태롭게 보였는지 그 차량이 미리 속도를 줄여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아직도 이때를 회상하면 아찔하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다음에 보이는 모텔에서 묵기로 했다. 

예정했던 평택에 한참 모자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출발한지 하루 만에 파김치가 돼버렸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