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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ing tour./국토종주(10.08.31)

[국토종주] 서울에서 해남까지 열번째 날-1 (10.09.09)

[국토종주] 서울에서 해남까지 열번째 날-1 (10.09.09)


강진-성산-제주



불편한 마음 탓인가 잠자리도 영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난 몇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일어났다

그러고 대합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몇 시간 지나자 사람들이 몇 명씩 들어와 카운터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어제 본 직원 한 명이 내게 다가와 그런데 예약은 했느냐 물었다

아니라 대답하자 예약을 하지 않곤 배를 타기 힘들다고 지금이라도 빨리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쓰라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던 게 그 때문이었다불안한 마음에 냉큼 줄을 섰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 사람이 몇 명 오더니 내가 만만하게 보였는지 

자기들이 먼저 와서 미리 자리를 맡아놨다며 나를 뒤로 밀어냈다

분명 방금 왔으면서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너무 허탈한 나머지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기 싫었다


여태까지 여행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항상 친절한 대우를 받아와서 내가 마음이 느슨해진 탓인지 

그런 불편한 상황에 대응을 할 수 없었다얼마나 염치도 없던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잘못하면 배를 못 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내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


항구에 배가 도착하고 미리 예약한 사람들이 줄지어 배를 타기 시작했다

예약을 하지 않은 대기자는 예약자들의 탑승이 끝난 뒤 순서대로 태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 나에게 말을 걸어온 직원 한 분이 나에게 오더니 표 결제했냐고 물었다

대기자로 기다리고 있다고 했더니 또다시 나를 냉큼 카운터로 끌고 가더니 내가 어제부터 기다렸다면서 표를 하나 끊어주셨다.

한 사람의 무례함에 잠시 기분이 상했지만 다른 한 사람의 친절이 다시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를 부당하게 밀어내면서 까지 배에 타려고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통쾌한 순간이었다

옆에서 나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자전거를 끌고 거의 마지막으로 배에 탔는데 심지어 그 인간들은 배에 타지도 못한 것 같았다

이래서 정직하게 살아야 되는구나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배에 오르고 자리에 앉았다그런데 심한 풍랑탓인지 배가 무척 흔들렸었다

갑판에 나가 바다를 보며 갈 수 도 있었는데 위험하다고 나가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방송이 몇 번이고 거듭되었지만 기어코 나가는 사람이 있었는지

 선장이 그 사람들 전부 들어올 때까지 배를 움직이지 않겠다며 시동을 꺼버렸다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더니 나갔던 사람들이 다 들어 왔는지 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탔던 배는 고속정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제주도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산포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서 얼마 지나지 않아 왠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잔뜩 맞으며 항구를 빠져 나와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날씨가 참 변덕스러웠다

태풍이 또 다가오고 있단 소리도 들렸다

군데 군데 있던 해수욕장도 들렸지만 비수기인 탓인지 사람 하나 없었고 적막하기만 했다


제주시에 들어서니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니 곧 멈추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해변가 정자에서 잠시 쉬면서 바다를 보고 있자니 참 기분이 뒤숭숭했다.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 혼자 와서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기도 했다

즐거운 여행길을 내 고집 때문에 망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김녕해수욕장에도 들어가 보았다

역시 비수기인 탓인지 아무도 없었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면서 잠시 멍을 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흥이 나질 않았다.






친구들을 다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버렸지만 습관처럼 나는 시청으로 향해 증거사진을 남겼다.


그래 일단 제주항에 가보자 하고 다시 발걸음을 땠다

제주시내를 한 바퀴 돌고 제주항에 도착해 보니 몇 십분 후에 인천으로 출발하는 페리가 있었다

자리도 넉넉히 남아있었다에라 모르겠다 인천행 표를 끊어버렸다.


제주도에 도착한지 4시간 남짓 나는 인천으로 향하는 오하마호에 몸을 실었다

페리를 타고나서 매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내가 탄 배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도착은 다음날 정오였다

밤바다를 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어떻게 보면 참 허무한 마무리였다


우정을 내팽겨치고 나홀로 제주도에 왔지만 불과 몇시간만에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동안 찍은 사진들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들었다.

잠자리도 영 편치 않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