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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ing tour./국토종주(10.08.31)

[국토종주] 서울에서 해남까지 마지막 날 (10.09.10)

[국토종주] 서울에서 해남까지 마지막날 (10.09.10)



잠자리는 불편했지만 이제 집으로 간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죽은 듯이 잠들었다 깼다. 

밖으로 나와보니 어디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륙이 보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있다 화장실에 갔는데 거기 써있던 문구 하나가 내 혼란한 마음을 정리해 주었다.



여행은 사는 법을 배우게 한다

뜻밖의 의도하지 않은 길을 가게 될 때

계획하지 않은 길에도 즐거움이 있음을 터득하게 해준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참 계획 없이 여행을 시작했다. 

길은 모르겠고 일단 달리자, 해남까지 한번 가보자 로 시작한 우리의 여행은 

그때 그때 갈 길을 정했고 정말 다사다난 했었다. 


나의 제주도행 친구들의 귀가로 나뉘어진 것 역시 계획하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을 마무리 지은 것이고 조금 감정이 상하였다 하더라도 

우리가 여태껏 지나쳐온 길들 그 과정, 그때의 즐거움까지 폄하되진 않을 것이다.



인천항에 도착하고 페리에서 내려 자전거를 받으러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단체로 자전거 유니폼을 맞추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르르 내리셨다. 

단체명이 9988인가 그랬는데 99세까지 팔팔하게 라는 뜻이었다.


 제주도 일주를 하시고 돌아오시는 길이셨다. 

전에 아산만에서 만난 어르신도 그러시고 이분들을 보면서도 참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지 약 1년 남짓 나름 팔팔하다고 말하는 20대 초반의 나이에도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이분들을 떠올리곤 한다. 


열정이 흘러 넘치면 그 무언들 해내지 못할까.

이분들의 모습에 감탄을 하다가 순서가 되어서 자전거를 받아 왔다. 

인천항에서부터의 길은 상당히 험난했다. 


항구다 보니 길에는 대형 트럭들로 가득 차 있었고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길은 만치 않았다. 

어찌어찌 헤매다 인천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서울행 버스는 분명 있을 터 이지만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천에서 가는 그 어느 버스도 자전거를 실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할 수 없이 자전거를 그대로 타고 집까지 가기로 했다. 

인천에서 집까지 결코 짧은 길이 아니었고 계속 도심에 도심을 지나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여간 길이 좋지도 않았다. 


부천쯤 들어서자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렸다. 

도저히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서 어느 빌라 주차장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

 다행히도 비는 금새 멎었다. 이제는 오기였다. 

나도 모르는 새 서울에 진입해 있었고 점점 아는 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광화문쯤 들어서자 무언가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십 수년 서울에 살면서 익숙하디 익숙한 거리이건만 나에게 왜인지 다르게만 느껴졌다. 

도착했다는 안도감뿐만 아니라 무언가 복잡 미묘한 감정이다. 

분명 익숙한 곳임에도 건물 하나하나, 길 하나하나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광화문을 지나 집 앞에 도착했다. 

족들이 나를 보더니 분명 제주도에 있을 놈이 어떻게 왔냐며 화들짝 놀랐다. 

제주도로 간다고만 하고 이렇게 빨리 돌아올 지는 생각하지 못 하셨던 것 같았다.


좌충우돌, 우여곡절, 다사다난, 우리의 이번 여행은 그 어떤 말로도 정리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지금 이렇게 여행기를 작성하는 것도 여행한지 5년이나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그 순간순간의 감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몇 십년이 지난다 하더라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